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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쇼생크 탈출'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은 1994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스티븐 킹의 소설을 각색한 극영화다. 프링크 다라본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팀 로빈스가 주인공 앤디 듀프레 역을 하고 모건 프리먼이 앤디의 친구 레드 역을 맡았다. 당시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영화 팬이 아니라도 꼭 봐야 하는 영화가 됐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긴장감 있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주인공 앤디는 1947년 은행의 부지점장 시절에 자신의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뉴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에서 친구 레드와 도서실의 브룩스를 만난다. 교도소장과 간수로 부터 비참한 대우를 받았지만 2년을 견딘다. 악질 간수장 바이런 헤들리에게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후 교도소장은 앤디를 도서관 관리 담당으로 배치한다. 앤디는 간수들의 세금 감면 상담 등을 도와주고 소장의 탈세와 비자금 관리를 도우면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도서관 관리를 맡았던 50년 수감 생활을 하던 브룩스는 가석방 되고 난 후에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교도소로 돌아가려 하다가 기둥에 목을 메고 자살을 한다. 절도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토미 윌리암스라는 젊은 죄수가 입소해 앤디와 친구가 된다. 앤디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토미를 도와준다. 토미를 통해 앤디의 아내와 정부를 죽인 진범인 앨로 불래치가 채포되어 수감 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누명을 벗고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튼 교도소장에게 사정을 보고하고 도움을 청했다. 소장의 불법적인 장부관리를 맡고 있는 앤디의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독방에 가두었다. 토미도 밤중에 불러내어 총살하고 탈옥하려 했다고 발표한다. 그 후 독방에서 풀려난 앤디는 흑인 친구 레드에게 멕시코의 바닷가 마을 지와테네호 이야기를 해주면서 레오가 나중에 출소하면 텍사스 포토행콕으로 와서 큰 나무 아래 돌을 들어내고 메시지를 보라고 한다. 앤디는 밧줄을 준비한다. 죄수들은 앤디가 자살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 점호에 앤디의 방은 비어 있었다. 소장이 수색해 본 결과 앤디는 16년 전에 레드로 부터 조그만 암석 망치와 여배우 포스타를 이용해 벽을 뚫고 나와 수백미터의 하수구를 통과해 쇼생크를 탈출한 것이 밝혀 진다. 벽을 뚫어 생긴 흙을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 운동장에 몰래 버렸다. 앤디는 탈옥한 날 아침에 스티븐스로 신분을 세탁하고 12곳의 은행에 들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모두 인출했다. 맥시코로 잠적하기 전에 쇼생크 교도소장의 부패와 살인에 대한 자료와 장부를 어론사로 보낸다. 정부 당국이 교도소에 들이 닥치자 간수장 헤들리는 체포되고 노튼 교도소장은 자살한다. 레드는 40년의 형기를 마치고 가석방이 됐지만 브룩스와 같이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앤디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포토행콕을 찾아가 보니 앤디의 편지와 함께 용돈이 있었다. 레드는 맥시코 지와타네호에 있는 앤디를 찾아 간다. 해변에서 배를 수리하고 있는 앤디와 재회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악역을 하는 교도소장과 간 수장은 결국 악행이 폭로되고 간수장은 체포되고 교도소장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쇼생크 감옥에서 50년을 복역한 브룩스는 석방되고도 사회 적응을 못하고 감옥으로 되돌아 가려다 목을 메고 죽는다. 2년 형을 받고 들어온 토미는 형을 잘 마치고 출소를 할려 했으나 간수장과 교도소장에 의해 살해 당한다. 4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레드도 사회 적응을 못했으나 친구 앤디를 찿아가 제2의 생을 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앤디는 누명을 쓴 살인자로 종신형은 받고 들어 갔지만 자신의 재능으로 동료들을 도와주고 악독한 간수장을 돕고 교도소장의 비자금 관리를 맡으면서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앤디는 자유를 갈망하며 희망과 양심을 버리지 않고 작은 망치로 16년간 탈출을 위한 벽을 뚫고 탈출한다. 친구 레드까지 맥시코 해변으로 불러 낸다. 교도소 만이 감옥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직장이 감옥이다. 토마처럼 조직 안에서 적응 못하고 맞아 죽는 자도 있다. 브룩스 처럼 50년을 복역하다 보니 그 조직을 벗어나서 못살고 되돌아 가려다 죽는 자도 있다. 레드처럼 사회에 나와 적응을 못하고 앤디를 찾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앤디 처럼 갈구하는 자유와 푸른 꿈, 끓고 있는 양심을 품고 16년을 망치 하나로 탈출의 벽을 뚫고 꿈꾸든 맥시코 해변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말은 하면서 막상 탈출을 못하거나 탈출했다가 돌아오거나 죽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맥시코 해변이 있는가.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이 조직에서 나에게서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자기 탈출을 한다면 맥시코 해변으로 갈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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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쇼생크 탈출'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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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덕업일신·망라사방" 경주가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
- 경주의 문화는 언제나 길 위에 있었다. 왕경으로 향하던 고대의 길부터 바다와 대륙으로 뻗어 나가던 근대의 철길까지, 경주역은 그 모든 숨결이 교차하며 겹치던 자리였다. 이곳은 단순히 기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경주가 바깥 세상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세상으로 내보내던 가장 역동적인 관문이었다. 이제 기차는 더 이상 서지 않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폐역이 된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 물음은 곧 APEC 이후 경주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것이며, 천년의 문화를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변모시킬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지난 APEC은 경주를 세계라는 무대 위에 내놓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경주는 화려한 초고층 빌딩이나 속도감 있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천년의 세월이 깃든 유산 위에 국제적 의제를 올리고, 전통과 현대가 충돌 없이 공존하는 미학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덕을 쌓아 업을 날로 새롭게 한다는 ‘덕업일신(德業日新)’의 현대적 실천이라 믿는다. 행사는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전시, 의전, 아카이빙, 콘텐츠 제작의 경험은 경주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이 실제적인 ‘일’들을 경주의 미래로 치환할 장소가 필요하다면, 그 출발점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곳은 단연 구 경주역사여야 한다. 구 경주역을 특정 건축물로만 소비하는 것은 이 장소가 품은 시간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일이다. 이곳은 ‘살아있는 문화복합 공간’으로서, 특히 청년들이 경주의 자산을 직업으로 삼는 ‘문화의 공장’이 되어야 한다. 역사 내에 들어설 청년 거점은 단순한 취업 상담소에 머물러선 안 된다. 문화재 수리 현장을 유리 벽 너머로 가감 없이 공개하고, 전통 공예와 현대적 기획이 만나는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 목수, 석공, 단청장 등 장인들의 기술이 청년의 감각과 만나 ‘전공’이 되고 ‘직업’이 될 때, 덕업일신은 추상적인 표어를 넘어 생생한 일상으로 구현될 것이다. 이러한 내실은 자연스럽게 세계를 향해 그물을 펼치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의 철학으로 확장된다. 망라사방은 힘으로 사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엮일 수 있는 포용의 그물을 조용히 펼치는 일이다. 구 경주역에 유네스코 관련 사무소나 국제문화 교류 거점을 유치하는 상상은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유산 보존과 문화 정책, 글로벌 인턴십이 이곳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경주는 일회성 행사의 도시를 넘어 세계의 인재가 모여들고 다시 뻗어 나가는 국제적 문화 플랫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APEC은 경주를 세계로 밀어 올린 것이 아니라, 경주가 이미 품고 있던 세계성을 재확인해 준 계기였다. 이제 구 경주역은 그 세계성이 머무는 종착역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기차는 멈췄으나 경주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배우고, 매일 고치며, 매일 새로 일하는 덕업일신의 정신이 이 공간을 채울 때, 망라사방의 그물은 경주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다. 사라진 경주역은 그렇게 가장 경주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여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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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덕업일신·망라사방" 경주가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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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부장 이야기'에서 보는 은퇴자산 관리법
- '자산관리를 언제 시작하면 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이다. 여의찮으면 세제 혜택이 있는 사적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하지 못하다 보니 '늦어도 최소한 언제 자산관리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이어 나온다. 사실 두 번째 질문이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50세 전후부터 10~15년 정도가 은퇴 자산 관리의 골든 타임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시기에 저축을 한 계단 높여야 한다. 50세 전후부터 소득이 많아진다. 이때 많아진 소득을 지출로 연결하지 않고 저축으로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김부장 이야기)를 보면 김낙수 부장이 희망퇴직서를 낼 때 인사팀장이 "회사를 나가서도 월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 그리고 퇴직금 이외의 목돈도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한다. 필자는 50대 때 성과급을 받으면 절반은 퇴직연금에 들어가고 3분의 1은 유보됐다. 그러니 성과급을 받아 봐야 세금 떼고 나면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성과급이 손에 들어오지 않다 보니 어려웠지만 퇴직할 때 의외의 목돈으로 돌아왔다. 이 기간에 자산의 축적은 운용 수익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제하다시피 저축을 한 데 기인했다. IRP(개인형 퇴직연금)나 연금저축을 비롯한 모든 세제혜택 상품은 나이에 따라 저축액이 달라지지 않는다. 20대 때도 900만 원 세액공제이고 50대 때도 900만 원이 한도다. 그래서 소득이 많아지면 세제혜택 상품의 범위를 늘려서 저축액을 늘려야 한다. IRP와 연금저축은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해주지만 900만원을 초과한 900만원은 과세이연과 저율과세의 혜택이 있다. 그 외 ISA(개인저축계좌)와 비과세연금보험 등을 추가로 활용해 저축액을 늘리면 된다. 둘째, 많이 쌓인 자산을 퇴직 때 바로 인출하지 않고 더 운용한다. 주된 직장에서 퇴직할 때쯤이면 자산이 많이 축적돼 있다. 이후 자산관리에는 두 길이 있다. 축적된 자산에서 돈을 인출해서 생활비로 쓰는 길이 있고, 재취업 등으로 생활비 정도의 소득을 벌면서 축적된 자산은 계속 운용하는 길이다. 후자의 길을 택하는 게 좋다. 몇억원 있으면 많은 것 같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김부장 이야기'에서 인사팀장은 김낙수 부장에게 "퇴직금 3억 원에서 세금 떼고 나면 그걸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몇 년 못 버틴다. 예를 들어보자. 60세에 퇴직한 사람이 금융자산은 5억 원이며 매년 4000만 원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하자. 만일 자산을 운용하면 4% 운용수익률을 얻는다고 하면 4000만 원씩 생활비로 꺼내 쓰면 10년 후에 2억 원의 자산이 남는다. 그런데 4000만 원 생활비를 재취업 소득으로 충당하고 5억 원을 10년 동안 운용하면 10년 후에 자산은 7억 4000만 원이 된다. 극대화된 자산에서 복리 효과를 좀 더 누린 결과다. 필자는 퇴직 후에 일을 이어가면서 축적된 자산을 계속 운용했다. 2022년에는 금융시장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그 뒤에 좋아지면서 적정한 수익을 올리게 됐다. 2022년부터 계속 인출해 지출에 충당했다면 지금은 자산이 많이 줄어 있을 것이다. 자산의 규모가 줄어들면 거기에서 나오는 배당이나 이자도 줄어들기 때문에 자산은 급속하게 축소된다. 필자의 친구는 연금과 관리소장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이전부터 보유했던 미국 주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 보니 최근에 자산이 아주 많이 증가했다. 자산관리는 빠를수록 좋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해주는 게 좋다. 이 시기를 놓치더라도 혹은 이 시기에 자산관리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50대 전후부터 10여년간은 자산관리의 골든 타임이다. 일찍 시작하지 못한 사람은 이 기간에 잘 대응하면 따라갈 수 있고, 반면에 일찍 자산관리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 기간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노후 대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김낙수 부장처럼 10억 원 상가 덜컥 사면 안 된다. 자만심과 욕심이 빚은 결과다. 소득이 많아지는 50대 전후에 ①지출을 늘리지 않고 저축액을 늘리고 퇴직금 이외의 목돈을 만들어 놓는 것, 그리고 ②주된 직장을 떠날 때 극대화된 자산을 바로 인출해서 쓰지 않고 계속 운용하면서 복리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50대 전후부터 10~15년 정도가 자산관리의 골든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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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부장 이야기'에서 보는 은퇴자산 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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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캐스팅 카우치' 성상납 비극은 언제 끝날까
-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는 연극이나 영화에서 배역을 얻기위해 육체를 제공하는 여배우를 이르는 말이다. 단어의 뜻은 배역 담당 책임자가 자기 사무실을 찾아온 여배우와 성행위를 하는 긴 의자라는 뜻이다. 영화 감독과 PD, 제작자, 투자자 등이 사무실 소파에서 면접을 보러온 여배우의 성상납을 받으며 캐스팅한다는 뜻이다. 할리우드 연예계에서 시작 됐으며 권력형 성범죄의 대표적 유형으로 일본에서는 베개영업이라고도 한다. 할리우드는 세계적인 명작과 스타들을 배출한 미국 영화산업의 메카이자 전 세계 영화시장의 50% 이상을 지배하고 있고, 지난 100년 동안 인류의 상상력과 판타지를 구현해 내는 꿈의 공장이 됐다. 그러나 이같이 화려한 할리우드의 이면에는 관행으로 묵인되어 온 비리와 그늘이 있었다. 1962년 36세로 사망한 할리우드의 최고 배우 마릴린 먼로는 회고록에서 "일부 제작자나 감독의 눈에 할리우드는 북적이는 매춘굴이였다. 그들은 할리우드를 침대 달린 회전 목마로 여겼다."며 캐스팅 카우치가 만연한 할리우드를 폭로했다. 2017년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무려 30여 년간 수 많은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업계의 엄청난 권력을 지닌 와인스타인은 사업상 미팅이라며 신인 여배우나 여성을 불러 성상납을 요구한 것으로 들어 났다. 밝혀진 피해자는 100명이 넘었고 39년 형의 선고를 받고 복역 했다. 현재 할리우드 거리에는 잠옷만 입은 와인스타인의 동상을 세우고 그 밑에 캐스팅 카우치라고 명시해 후세의 경계로 삼고 있다. 이 같은 만행이 들어 나면서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레아 세이두 등 현역 여배우가 피해 사실을 알렸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SNS를 통한 'ME TOO' 운동이 세계적으로 퍼졌다. 국내에서는 2009년 장자연 사건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연기자 111명 연예인 지망생 240명, 연예산업 관계자 11명 등을 심층 면접 조사한 결과 여성 연기자 45.3%가 술 시중 요구를 받았으며 60.2%는 방송관계자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31.5%는 신체 일부를 만지는 행위 등의 성추행 피해를 봤다고 밝혔으며 21.5%는 성관계를 요구받거나 6.5%는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2019년 충남 지사 안희정이 여비서에 대한 성폭력 범죄로 실형을 받았다. 2020년에는 서울시장 박원순이 부하 직원의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하자 목숨을 끊었다.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 범죄 행위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우리 주변에는 이같은 권력의 강압에 의해 행해지는 성폭력과 갑질에 의한 성상납 행위가 암암리에 얼마나 행해지고 있는 지를 알 수가 없다. 세상에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성상납을 받으며 여성을 놀이개로 삼는 일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원인이 무엇일가.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되어 있는 양극화와 불평등 때문일 것이다. 역사 속에는 이같은 불펑등 해소를 위해 다양한 혁명이나 개혁이 시도됐지만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했다. 만민 평등을 외친 공산주의 혁명도 실패했으며 제도적 개혁을 시도했던 자본주의도 성공하지 못했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재능과 능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불평등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 하더라도 약자와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 사회가 되면 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른 자기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 문명 사회에 캐스팅 카우치의 자행은 인간이 아직 동물이라는 증거다. 세상에는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정조 뿐 아니라 인격과 양심도 바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억울해도 살기위해 비겁하게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나쁜 왕이 있었다. 지금은 그와 같은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과 폭력의 형태도 너무나 다양하고 위장되어 있다. 할리우드 거리에 성 폭력자 동상을 세우듯이 금수 같은 폭력자의 동상을 세워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 제작자와 여배우 사이 뿐 아니라 상급자와 하급자, 사용자와 근로자, 스승과 제자 등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 폭력의 비극이 없어져야 비로소 인간이 사는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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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캐스팅 카우치' 성상납 비극은 언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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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의 정치지도자②-넬슨 만델라]
- "나는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을 계속해 왔습니다" 증오 대신 용서를 선택한 통합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소웨토 마을. 이곳은 넬슨 만델라가 살았던 집이자, 지금은 '만델라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는 공간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소박한 집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의 상징이자, 세계가 기억하는 정의와 화해의 출발점이다. 넬슨 만델라는 백인 우월주의 체제였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권에 맞서 평생을 투쟁한 인권운동가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그는 단순한 저항가를 넘어, 분노를 넘어선 용서의 정치를 실현한 세계적 지도자였다. 1962년 체포된 그는 내란 선동과 반역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섬 감옥에서 27년을 복역했다.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만델라는 증오나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화해였다. 그는 감옥 안에서 자신을 투옥한 정적들과 대화를 준비했고, 고통 속에서도 인간 존엄을 지켰다. 1990년 석방된 후, 그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고 민주 선거를 준비했다. 1994년, 역사상 첫 자유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흑백 갈등으로 갈라진 국가를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통합하기 시작했다. 그는 복수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과거의 진실을 드러내고,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통해 미래를 향한 국가의 공동체 정신을 세웠다. 만델라의 위대함은 정권을 잡은 뒤에 더욱 빛났다. 그는 단임으로 물러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고, 퇴임 후에도 국제 인권 활동에 헌신하며 전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 정치적 반대자와도 함께 웃으며 손을 잡았고, 자신에게 고문을 가한 감시관들과도 함께 식사하는 품격을 보였다. 만델라가 강조한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나는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을 계속해 왔습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자유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자유도 함께 원합니다. 진정한 자유란 타인의 자유와 함께할 때에만 완전한 것입니다." 그는 자유를 '개인의 권리'가 아닌 '공동체의 책임'으로 보았으며, 통합을 '감성적 구호'가 아닌 '실천의 정치'로 구현했다. 그의 정치가 위대한 이유는 화려한 성과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간애와 품격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과거사 문제, 지역갈등, 이념 대립으로 깊게 갈라져 있다. 넬슨 만델라는 우리에게 말한다. 과거는 직시하되, 복수는 멈추고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증오보다 용기가, 복수보다 용서가 더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그는 증명해 보였다. 넬슨 만델라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는 뒷줄에 있다가 무리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이다. 가장 앞에 서는 것은 양들이 길을 잃을 때뿐이다." 그는 말 그대로 앞서지 않으면서도 모두를 이끌었다. 넬슨 만델라는 통합의 상징이며, 인간 존엄의 수호자였다. 그의 삶은 리더십의 가장 깊은 본질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만델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진정한 용기란 총칼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다. 넬슨 만델라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세계의 양심이 되어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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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의 정치지도자②-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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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의 정치지도자① -프랭클린 D. 루즈벨트
- 미국 뉴욕주의 하이드파크.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생가이자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던 자택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프랭클린 D. 루즈벨트 국립역사공원’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매년 수많은 미국 시민들과 세계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미국인들에게 그는 ‘대통령 중의 대통령’으로 세계인들에게는 ‘국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지도자’로 기억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번 연속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는 대공황의 혼돈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국가적 위기를 연이어 맞았지만 이를 정면 돌파하며 미국을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국가로 이끈 ‘위기의 대통령’이었다. 대공황의 늪에서 국민을 구해낸 뉴딜의 설계자 1933년 3월 4일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미국은 붕괴 직전이었다. 은행은 무더기로 파산했고 실업률은 25%를 넘었으며 자살률은 최고치에 달해 있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는 ‘담대한 실험’을 외치며 전례 없는 개혁정책인 뉴딜(New Deal)을 단행했다. 테네시강 개발공사(TVA), 농업조정법(AAA), 공공사업진흥청(PWA) 등으로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일자리 창출을 이끌었고, 노동조합법과 사회보장법으로 노동자 보호와 복지국가의 토대를 놓았다.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개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시기는 오늘날 복지국가와 민주 자본주의 체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당시 공화당과 보수 언론들은 이를 “사회주의적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지만 국민들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휠체어 속의 강철 의지 – 인간 루즈벨트 루즈벨트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대통령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장애였지만 그는 휠체어에 앉은 모습을 대중 앞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조인을 통해 일어선 채 연설했고 의지와 자신감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켰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업무를 소화했고 누구보다 생동감 넘치는 연설과 국민과의 라디오 방송(‘노변담화’)으로 소통하며 대중의 신뢰를 얻었다. 인간적 한계를 초월한 그의 태도는 오늘날에도 많은 리더십 교육에서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소개된다. 전쟁의 지도자 – 세계 질서를 설계한 전략가 1941년 진주만 공습 이후 루즈벨트는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시킨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전쟁을 지휘한 것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까지 병행했다. “모든 인간은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1941년 그의 ‘4대 자유’ 연설은 인류 보편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를 선언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그는 처칠과 손잡고 대서양 헌장을 발표했고 스탈린과의 불편한 동맹도 감수하며 나치와 군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종전 직전인 1945년 유엔 창설의 청사진을 마련해놓고 건강 악화로 끝내 그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는 전쟁의 끝을 보지 못했지만 평화의 시작은 그의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국가의 어른, 품격 있는 지도자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대통령이 된 후에도 루즈벨트는 늘 미국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의 서재에는 “내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퇴임 후에도 국익과 민주주의 원칙을 흔들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고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으며 비판받을 때는 스스로를 성찰했다. 자신이 죽은 뒤엔 거창한 기념관도 원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 공동묘지에 조용히 묻히길 바랐다. 그는 늘 ‘지도자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짊어진 존재’라고 말해왔다. 이 철학은 드골이 보여준 청빈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민주적 절차 속에서 실현된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오늘의 한국 사회는 새로운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불평등, 청년 실업, 고령화, 기후위기, 국제정세의 불안정… 우리는 또 다른 ‘대공황과 전쟁’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럴 때일수록 루즈벨트 같은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강한 정부를 통해 국민을 보호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며 신념과 도덕성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도자. 단호하되 포용하고 원칙은 지키되 실용적인 리더십이 절실하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루즈벨트처럼 퇴임 후 청빈하게 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신뢰와 품격으로 입증하라는 의미다.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루즈벨트는 살아서는 위대한 개혁자였고 죽어서는 자유의 설계자였다. 그는 미국을 넘어 세계인의 지도자였으며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증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유산은 전시 대통령, 복지국가 설계자, 국제질서의 창조자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루즈벨트를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그처럼,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가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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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의 정치지도자① -프랭클린 D. 루즈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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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년 연장보다 '계속 고용'이 상생 해법이다
-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20%를 넘어서는 시대다. 이는 단순히 인구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노동시장 전반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신호다. 그 중심에는 '정년 연장' 논란이 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자 정치권과 일부 노동계에서는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자는 주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이 고령자에게는 기회일지 모르지만, 청년층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고, 기업에게는 인건비 부담의 확장을 의미한다.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계속 고용 제도(continued employment system)’가 주목받고 있다. 고령자 950만 시대, 일할 기회를 어떻게 줄 것인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는 954만 명, 전체 인구의 18.4%에 이른다. 2035년이면 3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한편, 정년퇴직 평균 연령은 59.3세, 기대수명은 83.6세로 은퇴 후 생계를 자립해야 할 기간이 20년 이상이다. 더 오래 일하고 싶은 고령자는 많아졌지만, 지금의 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해법처럼 보일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정년을 65세로 늘릴 경우 약 45만 명의 노동력이 추가 확보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비용 증가와 청년 고용 감소라는 이중 리스크를 동반한다. 정년 연장, 누구를 위한 해법인가? 기업 입장에서 정년 연장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대기업의 고령 직원 1인당 연간 인건비는 9,500만 원 이상이다. 정년 연장 시 기업 전체 인건비는 연 5조~8조 원이 추가된다. 일부 기업은 정년 연장 논의에 대비해 신입 채용을 최대 30~40% 축소하기도 했다 게다가 청년 구직자 입장에서는 ‘자리가 없다’는 구조적 병목을 유발한다. 실제로 2024년 청년 체감실업률은 22.6%에 달해, 통계상 실업률(7.1%)보다 훨씬 높다. 고령층을 배려하느라 청년층을 희생시킨다면, 세대 간 갈등만 가중될 것이다. (일본의 사례) 정년은 그대로, ‘계속 고용’은 늘린다. 일본은 한국보다 일찍 고령화에 진입한 나라다. 이들은 정년을 60세로 유지하면서도, 법으로 65세까지 ‘계속 고용’을 의무화했다. 2023년 일본의 60~64세 고용률은 76.8%이다. OECD 평균(59.1%)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재고용자의 임금은 정년 전 대비 평균 60~70% 수준으로 하향 조정해 계약직, 시간제, 직무 전환 등을 통해 고령자 일자리의 유연성 확보했다. 즉, 정년은 그대로 두되,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열어주는 절충안을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형 계속 고용 모델’이 필요한 이유는 정년 연장은 제도의 경직성을 강화하지만, 계속 고용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계속 고용 모델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①직무 재설계 및 재배치 시스템 도입 정년 이후에는 단순 반복업무, 멘토링, 서비스직 등으로 전환하는 것과 고령자 친화적 직무 개발과 조직 내 재배치 매뉴얼을 구축하는 것이다. ②성과·직무 기반 임금 체계로 전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줄이고, 고령자에게 맞는 ‘임금 피크제+성과급제’ 운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③정부의 인센티브 연계 중소기업의 고령자 재고용 시 사회보험료 지원, 고용안정장려금 지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정년 후 재고용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 세제 감면도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④경력 관리·재교육 강화 고령자 대상 직업 훈련 및 전직 지원 확대와 지역사회 기반 재취업 연계 프로그램 활성화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결론족으로 "상생의 조건은 유연성이다" 정년 연장은 고령층에게 ‘시간’을 주지만, 계속 고용은 ‘기회’를 준다. 청년과 고령자, 기업과 국가가 모두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기 위해선, 일률적 제도보다 유연한 정책 설계가 핵심이다. 법이 아닌 대화로, 정년이 아닌 일자리로, 우리는 일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연장이 아닌, 지속가능한 고용 설계다. 정년 연장보다 계속 고용. 이것이 진짜 미래형 노동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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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년 연장보다 '계속 고용'이 상생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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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귀인 이론 '내 탓이요'하면 된다
- 귀인이론(歸因,attribution theory)이란 자신 또는 타인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추론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프리츠 하이더(1896~1988)와 해럴드 켈리(1921~2003)에 의해 연구가 시작됐다. 이 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더는 인식론을 바탕으로 사회적 지각과 대인관계에서 귀인 과정을 적용해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에 내적인 기질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을 내부 귀인이라 하고 외적인 상황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을 외부귀인으로 이분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연인의 행동이나 노숙자 행위를 이해할 때 어느 귀인에 입각해 보는냐에 따라 상반된 판단이 나오고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켈리는 귀인을 할 때 한 가지 정보에 의거하지 말고 상대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귀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공변모형(covaiance model)을 제시했다. 합치성과 특이성, 일관성 정보를 종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또한 행위에 대한 귀인 과정에 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첫째 대응 추론 편향으로 행동이 발생한 상황적 요인을 과소평가하고 행동을 한 행위자 기질이나 성향과 같은 내적 요인에 쉽게 귀인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행위자에 대한 관찰자 편향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은 기질적 요소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는 반면 자신의 행동은 상황적 요소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편향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자존감이 위협 받게 되면 이를 지킬려는 동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 경험에 대해서는 기질적 내부 요소에 귀인하는 반면, 실패에 대해서는 상황적 외부 요인에 귀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두고 자기고양 편향(self-serving bias)이라 한다. 이같은 편향으로 인해 '남이 하면 분륜 내가 하면 로맨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자신의 믿음이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결국 자신의 믿음대로 타인의 행동이 변화하는 것을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ing), 피그밀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도 한다. 바보 온달에 관해 평강 공주의 관찰은 다른 사람 처럼 내부적 귀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온달과 혼인 하고 훌륭한 무사가 되게 했다. 이와 같은 하이더의 귀인이론에 입각하여 가정과 학교, 직장, 사회의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 보아야 한다. 부부가 서로 사실 여부를 떠나 무시보다 우대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자녀와 제자에 대해서도 책망보다 칭찬을 계속 해주면 어찌될까. 피그밀리온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삶의 현장에는 학문적 귀인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례가 많이 있다. 만약 대상의 좋은 행동을 귀인할 때 관찰자는 그 행동의 내부적 요인을 찾고 대상의 나쁜 행동을 귀인할 때는 외부적 요인을 찾는 것이 좋다. 물론 좋은 행동 나쁜 행동의 원인이 자신인지 상황인지에 관한 판단은 스스로도 하겠지만 그 행위자가 재활의 동기를 얻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행위를 한 관찰 대상이 자신일 경우는 그 반대의 귀인을 찾는 입장이 필요하다. 즉 나쁜 행위는 내부 요인에서 좋은 행위는 상황에서 귀인을 찾는 것이 자신을 위해 도움이 된다. 김수환 추기경은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는 방법은 모두 '내 탓이요'라고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육과 경영의 현장에는 '네 탓' 공방이 커지고 있다. 길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도 대통령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정치 광장에는 '네 죽어야 내가 산다'는 분열과 증오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에는 정치가 실종되고 행정도 법원에 목을 매어 놓고 있다. 자기 의견과 다른 사람을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타도해서 없애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고 있다. 탄핵 찬반의 두 진영이 갈라져 총칼은 없지만 사생결단이 거리와 미디어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로가 사건의 원인이 자기가 아니고. 네 때문에 일어났다고 외치고 있다. 하이더 귀인이론에서 지적하는 대응추론 편향이 극대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사는 동네가 금수가 우굴거리는 정글이 되고 만다. 양심과 배려도 없고 앙심과 증오가 차있는 사회가 된다면 어찌 되는가. 이 정도로 먹고 살게 해놓고 더불어 사는 꼴이 이 수준 밖에 안 된다면 땅을 치고 탄식할 일이다. 대통령 그거 누가 하면 어떤가. 탄핵 찬반 단식과 삭발, 분신을 하고 있다. 이래서 될 일인가. 대통령 시켜놓고 좀 잘 못 했다고 끌어내리고 또 누구로 바꾼다고, 바꾸어 봐야 비용만 들고, 국민 감정에 상처만 내고 헌법이나 바꾸고 국민 감정도 누구러진 후에 대선 치루면 될것 아닌가. 정치는 실종됐다. 시위대 발밑에 깔려 죽었다. 헌재 담벼락에 목숨줄을 걸어놓고 개처럼 짖어대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야 할 나라가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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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귀인 이론 '내 탓이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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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의 새로운 변화 이끈다!
-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여덟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는 10월 말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위상을 드높이고 미래를 향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현재 경주시는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상회의장 개보수, 숙박시설 정비, 미디어센터, 만찬장, 전시장 건립 등 기본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경주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대적인 도로 정비와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주가 찬란한 역사를 품은 문화도시이자 현대적 관광 인프라를 갖춘 도시라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릴 생각입니다. 주회의장인 보문관광단지는 물론 불국사, 경주IC 등 주요 진입로를 포함한 5개 노선에 총 사업비 247억원을 투입해 도로 포장, 조명 설치, 보행로 및 자전거도로 정비 등 대대적인 정비를 합니다. 특히 보문관광단지는 1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음악분수광장, 산책로 정비, 경관조명, 미디어파사드 등 야간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한 시는 주요 진입로를 중심으로 노후 주택과 담장 정비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울산 방면, 포항 방면, 경주IC 방면 등 주요 도로변의 노후된 건축물과 담장을 경주만의 특색있는 디자인을 입혀 도시의 품격을 한층 높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노선별 사전 조사를 완료했으며 주택가 담장 25곳을 포함해 가로변에 역사성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경주시의 이 같은 노력에 대해 너무 외형에만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행사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났을 때 첫 인상이 중요하듯 도시가 주는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이번 APEC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세계 많은 정상들과 고위급 각료들, 글로벌CEO들과 전세계 언론인들이 경주를 처음 찾게 될 텐데 그들은 경주라는 창을 통해 대한민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경주가 주는 첫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사실 행사 자체는 역대 어느 정상회의 보다 더 잘 치를 자신이 있습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치른 대한민국이잖습니까! 비록 경주가 작은 지방도시이지만 세계NGO총회를 비롯해 150여 차례의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은 단순한 행사 개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주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따뜻한 미소와 친절, 질서와 청결로 글로벌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합니다. 아름다운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경주시는 매월 네 번째 수요일을 'APEC 클린데이'로 지정하고 민관이 함께하는 손님맞이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APEC 클린데이를 통해 지역 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노후 시설물과 다수 민원 취약지 등을 중점적으로 정비할 계획입니다. 또한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내 집, 내 점포 앞 치우기, 우리 동네 꽃밭 가꾸기, 집 앞에 꽃 화분 내놓기 등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 10대 실천과제'를 발굴해 실천해 나갈 예정입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서 동아시아 문화와 교류했던 역사적 전통을 지닌 도시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유산을 계승해 21세기 국제도시로 도약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며, 이를 통해 경주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남은 기간 철저한 준비로 성공적인 APEC 개최를 이루고 이를 발판 삼아 경주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이겠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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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의 새로운 변화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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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소나무재선충병 국가가 적극 나서야
- 소나무 재선충병을 막기 위해 각 지자체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 등에 기생해 나무를 갉아먹는 해충으로서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일명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불리는데 일단 감염되면 100% 말라 죽는다. 지난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2004년 12월 양남면 수렴리에서 첫 발생한 이후 현재 경주시 20개 읍·면·동, 169개 리·동으로 피해 면적이 확대된 상태다. 소나무 재선충병이 발생하면 발생지역 감염목은 즉시 모두 베어낸 후 소각·파쇄한다. 최근 경주지역 내 소나무재선충병이 3년 사이 2만1848본에서 12만3819본이 발생했으나 이를 방제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예산 확보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전문가는 "예산부족이 근본 문제"라며 "몇 년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면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텐데 예산 확보가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경주시의 상황은 그리 녹녹하지가 않다. 올해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고작 40억원 정도라고 하니 어떻게 활용해야 될지 오리무중이다. 경주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배정된 예산으로는 방제사업에 어려움이 많으며 1년에 약 500억원 정도의 사업비로 5년간 투입한다면 재선충병을 억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혀 심각한 상태임은 분명하다. 재선충 방제는 기술뿐만 아니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고 지자체장의 의지가 무엇 보다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은 방재사업 보다는 치적사업에만 집중하는 단체장들의 성향도 재선충 피해를 키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떼어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나무다.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에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걸고 혼례 때 초례청 상 위에는 소나무를 병에 꽂아 놓았다. 이러한 소나무가 재선충병으로 멸종된다는 것은 비극이다. 따라서 소나무를 살리는 일을 국가적 사업으로 확대해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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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소나무재선충병 국가가 적극 나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