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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천년고도의 밤을 밝히는 따뜻한 발걸음, 자율방범대
    어둠이 짙게 내린 경주의 골목길, 경찰차의 불빛이 미처 닿기 힘든 좁고 깊은 길목마다 어김없이 반짝이는 빛이 있다. 무거운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아야 할 늦은 밤, 기꺼이 휴식을 반납하고 형광 조끼를 입은 채 묵묵히 동네를 걷는 이웃들. 바로 자율방범대원들이다.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은 결코 거창한 구호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무심코 지나친 고장 난 가로등을 발견하여 불을 밝히고, 늦은 밤 귀가하는 학생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며, 인적이 드문 공원을 한 번 더 둘러보는 그 작고 다정한 수고로움들이 모여 우리의 안전한 일상을 빚어낸다. 낮에는 각자의 삶터에서 치열하게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밤이 되면 이웃을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묶는 남다른 사명감. 범죄예방 현장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단순한 치안 보조자를 넘어,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가장 따뜻하고 단단한 방패와 같다. 물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우선의 보루는 경찰이다. 하지만 견고한 치안 인프라에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참여가 더해질 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비로소 가장 완벽한 시너지를 낸다. 동네의 골목 지리와 사정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아는 주민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결합될 때, 범죄의 사각지대는 그만큼 좁아지기 때문이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대원들과 나란히 발을 맞추어 걸을 때면, 묘한 온기와 함께 깊은 안도감이 밀려오는 이유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묵묵히 골목을 걷는 자율방범대의 노고에 주목하고, ‘공동체 치안’의 참된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할 때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경찰의 굳건한 연대 속에서 천년고도 경주의 밤은 오늘도 평온하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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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2
  • [논평] 경주시 SMR 유치, 신중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경주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소형모듈원전(SMR) 후보부지 유치 신청과 관련해 31일 논평을 발표하고 경주시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 단체는 SMR 사업의 실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현재의 유치 추진이 지역 미래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30일 마감된 소형모듈원전(SMR) 후보부지 유치 신청 결과는 기대와 달리 매우 저조했다. 신청 지자체는 경주시와 기장군 단 두 곳에 그치며 그동안 제기돼 온 '유치 경쟁'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졌다. 경쟁은 커녕 사실상 외면에 가까운 결과다. 통상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대 등 실질적 이익이 기대될 경우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SMR 유치에는 기존 원전이 위치한 지역만 참여했을 뿐 다른 지자체들은 나서지 않았다. 이는 SMR이 기회보다는 부담과 위험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이번 결과는 지난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 당시보다도 낮은 참여 수준이다. 당시에는 경주를 비롯해 포항, 영덕, 군산 등 여러 지역이 신청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사회적 갈등이 컸던 사업조차 복수의 지자체가 참여했던 점을 고려하면 SMR에 대한 현재의 낮은 관심은 그 의미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여전히 '유치 경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해석이며 상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시각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흐름은 경쟁이 아닌 명백한 기피 현상에 가깝다. 경주시는 이러한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SMR은 아직 경제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평가되며 지역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도 부족하다. 반면 잠재적 위험성과 불확실성은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SMR 후보부지 유치 신청에 대해 보다 신중한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시민 안전과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려한 판단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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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1
  • [기고] 안전점검 대비 물품 구매 사기 주의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들리고, 뉴스에서도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스캠(scam)이다. 보통 금전적 목적의 사기 행위와 관련해 많이 쓰이는데 그 중에서도 관공서나 공공기관을 사칭하면서 소상공인 들에게 접근해 여러 가지 명목으로 물품 대리구매를 요구하여 금원을 편취하는 범죄를 노쇼(no-show) 사기라고 한다. 노쇼 사기는 나날이 진화하여 우리 사회의 민생 경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로 대두되고 있으며 최근 피해 발생 건수들도 급증하고 있다. 기존에는 공공기관을 사칭하여 미취급 물품을 ‘대리구매’ 해달라 요청한 후 가짜 유통업체 알선을 통해 돈을 편취하였다면, 최근에는 시청·소방서 등을 사칭하여 교회·숙박업소·캠핑장 등 소상공인들에게 ‘안전점검’ 대비 물품을 비치해야 한다며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안전 관련 내용을 범행 시나리오로 삼아 돈을 편취한다. 노쇼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전화 거래 요청이 있다면 의심하고 직접 확인을 해야한다. 노쇼 사기는 신분사칭과 신뢰형성이 필수이기에 우리 사회에서 공신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직업군을 선택하고 단순히 말로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위조된 명함이나 정교하게 제작된 가짜 공문까지 제시된다. 따라서 반드시 사칭된 기관에 직접 방문하거나 공식적인 채널로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대량 주문, 대리구매, 선결재 요청이 있다면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의심스러울땐 곧장 112로 전화해도움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과거 그 기관과 실제 거래를 한 사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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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3
  • [불교경전] 우리말 반야심경
    ▲우리말 반야심경 한역 「반야심경」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부터 전통적인 불교의식에 고졸한 맛 그대로 오랜 세월동안 독송하고 있지만, 불교 대중화를 위해서 대중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로 풀이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한문의 뜻을 새기며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말로 읽어 직접 뜻이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에서였다. 조계종에서도 한글 반야심경을 정하였는데 오늘은 여러 우리말 해설 가운데 청담스님이 번역한 「우리말 반야심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님만의 독특한 새김이 있어서 반야심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청담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큰 지혜로 참 '마음'에 돌아서는 말씀관자재보살이 지혜로 도를 닦아 '참마음 자리'를 깨닫고 보니, 물질, 느낌, 따짐, 저지름, 버릇 등의 다섯 가지 '마음'의 고난에서 벗어났느니라.사리불이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므로 물질이 바로 허공이며 허공이 바로 물질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의 느낌과 따짐과 저지름과 버릇들이 바로 부처님의 밝은 지혜이며 부처님의 광명지혜가 바로 중생들의 나쁜 생각이니라.사리불이여, 이 모든 것들이 없어진 '참마음 자리'는 생겨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눈, 귀, 코, 혀, 몸, 생각도 없으며 또한 형상, 소리, 냄새, 맛, 이치도 없으며, 쳐다보는 일도 들어보는 일도 맡아보는 일도 맛보는 일도 대어보는 일도 생각해보는 일도 없으며, 허망한 육신을 '나(自我)'라고 하는 그릇된 생각(無明)도 없고, '나'라는 그릇된 생각이 없어졌다는 생각마저 없으므로 '나'를 위한 움직임(行)도 없으며 생멸도 없어지고 주관과 객관의 대립도, 감각, 욕심, 가짐, 업(業), 출생, 사망 등 열두 가지 인연법칙이 모두 없으며, 늙고 죽는 것도 없고 늙고 죽음 다 없어진 것도 없으며 그 괴로움의 원인과 그 괴로움을 벗어난 것과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까지도 없으므로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느니라. '마음'은 본래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이 되어 아무 데도 걸린 데가 없으므로 겁나는 일이 없으며 꿈같이 허망한 생각이 없어서 최후의 열반에 이르게 되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도 이 '마음자리'를 깨달아 가장 높고 바르고 밝은 지혜로써 생사를 초월했고 자유자재한 경지를 성취했느니라.그러므로 생각의 주체인 이 마음도 아닌 '마음'이 가장 신비하고 가장 밝고 가장 높은 주문이며, 절대 아닌 절대로서 이 마음은 모든 것과는 다르면서 또한 만물과 둘이 아닌 주문이므로 능히 모든 고난을 물리칠 수 있고 진실하며 허망됨이 없느니라. 이에 마음을 깨닫는 주문을 말하리라.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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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풍수연재] 전통민속마을의 전형, 양동마을의 풍수(1)
    우리나라에 ‘전통민속마을’ 이름이 붙은 마을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관광지로의 탈바꿈 화 정도가 작은 곳이 양동마을이다. 자연히 전국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어왔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발길이 더 늘어났다. 유명세에 걸맞게 풍수학계에서도 양동마을에 대해 많이들 언급해 왔다. 이에 2회에 걸쳐 풍수의 시선으로 양동마을을 살펴본다. 단 이번 회는 깊이 있는 풍수 이야기보다 방문객의 시선에서 양동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풍수적 볼거리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양동마을, 나아가 우리나라 전통마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양동마을 풍수의 시작과 끝, 설창산과 성주봉 마을의 주산 설창산이 자식을 품듯 두 팔을 크게 벌려 마을을 품고 있다. 풍수의 시선에서 양동마을 관람의 시작은 마을 입구에서 시작한다. 마을 밖 주차장에 주차 후, 걸어서 매표소와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면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보인다. 이곳이 마을 입구다. 여기서 고개를 들어 보면 저 멀리 마을 뒤로 제법 높은 산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단정하고 품격이 느껴진다. 이 봉우리가 양동마을의 풍수적 주산(主山)인 설창산이다. 마을의 모든 고택들은 설창산 줄기에 잇대어 있다. 모두 설창산 정기를 이어받고 있다는 말이다. 또 설창산이 양팔을 크게 벌려 제 자식을 돌보듯 마을을 품고 있다. 그 품 안에서 고택들이 사이좋은 형제 마냥 오순도순 모여있다. 그래서 양동마을 풍수의 첫걸음은 설창산에 눈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번에는 좌측의 개울을 건너 향단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뒤(동쪽)를 돌아보자. 그럼 마을회관 너머로 역시 모양이 봉긋한 산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양동마을의 안산(案山)인 성주봉이다. 우리나라 전통 고택은 단정한 봉우리가 보이는 방향으로 마당과 대문을 배치했다. 봉우리의 좋은 기운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경주 최부자 고택,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 등 전국 여러 고택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사람의 머리에 얼굴이 있고 뒤통수가 있는 것처럼, 산봉우리도 그렇다. 그럼 산봉우리의 어느 쪽이 터를 보고 있어야 좋을까? 그렇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산봉우리의 얼굴이 터를 향해 있어야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터에서 산의 뒤통수가 보이면 결코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를 쳐다보고 눈길을 주고 있을 때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등 돌리고 있는데 괜히 집적거리다가는 치한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양동마을에서 성주봉의 얼굴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조금씩 차이 나지만 주요 고택 네 채다. 고택 네 채의 마당이나 대문을 통해 보는 성주봉의 얼굴이 가장 반듯하다.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가문이 성주봉 얼굴이 잘 보이는 곳을 차지하기 위한 풍수 쟁탈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양동마을 고택 방문객은 꼭 마당이나 대문으로 성주봉을 찾아보길 바란다. 관람의 재미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주봉 찾기는 양동마을 풍수의 마무리가 된다. 여기서 잠깐 전통 고택 관람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팁을 드린다. 일반인들이 고택을 방문하면 대문을 통과해 마당에 서서 첫 눈길을 바로 건축물에 맞춘다. 이를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방문객 시선’이라 한다. 이럴 경우 건축물 자체만을 바라보게 되며 건축물과 그 터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풍수의 시선은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마당에서 담장 너머의 산줄기 물줄기에 눈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주인의 시선’이라 한다. 주인의 시선으로 보면 건축 조영자가 왜 이곳에 터를 잡았고, 또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공간구성을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온다. 풍수에 형국론이 있다. 산수(山水)의 모양을 사람이나 동물 등에 비유해 혈을 찾거나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중 산의 형상을 야(也), 물(勿), 일(日), 용(用) 등의 글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양동마을은 물(勿)자형 형국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주산(主山)인 설창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4개의 능선과 그 사이의 골짜기로 이루어진 모습이 물(勿)자를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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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5
  • [기고] "오늘도 보이스피싱에 속고 있는 당신에게"
    “경찰입니다. 지금 속고계십니다. 지금 통화하고 있는 그 전화, 사기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보이스피싱 의심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면 이미 피해자는 전화기 너머 누군가와 연결된 채이다. 제복을 입고 신분증을 보여도 소용없다.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분은 검사래요.” “금융기관에서 직접 온 전화예요” 경찰청과 금융당국 통계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는 매년 수만 건에 이르고, 2025년 1월–10월간 누적 피해는 경찰청 기준 약 1조 566억원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였다. 더 무서운 사실은 피해건수보다 1인당 피해 금액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자금, 전 재산, 심지어 대출까지 내어 보이스피싱범에게 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은 더 참혹하다. 피해를 막기위해 달려왔지만, 피해자는 이미 우리보다 전화기 너머의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 오늘날의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단순한 전화사기가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정교하게 계산한 조직범죄이다. 공포를 만들고, 상대를 고립시키고,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특히, 최근 가장 위험한 수법은 어플리케이션 설치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보안 어플입니다.” “금융보호 프로그램입니다.” “수사 협조용 어플입니다” 이 말들에 속아 어플을 설치하는 순간, 당신의 휴대전화는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검색기록, 문자, 통화내역, 계좌까지 모두 감시당할 수 있고, 어디로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범은 이 전화를 가로챌 수 있다. 피해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말한다. “제가 직접 경찰에 전화해서 확인했어요” “은행이 전화를 안받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전화기가 범죄자의 손에 장악된 것이다. 오늘도 출동 경찰관은 이야기한다. “이건 보이스피싱입니다. 지금 당장 전화를 끊으셔야 합니다. 어플을 삭제하셔야 합니다. 돈을 보내면 안됩니다” 가장 큰 비극은 피해자들은 이미 보이스피싱범을 신뢰할 수 밖에 없게 설계된 상황 속에서 경찰관을 만난다는 점이다. 그럼 이 잘짜여진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공공기관, 금융기관은 절대 전화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비밀을 요구하지 않는다. 계좌이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로 당신을 협박하지 않는다. 의심은 무례가 아니다. 전화를 끊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오늘 그 한 번의 끊음이 당신의 내일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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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2
  • [풍수연재] 일제의 풍수 침략(2)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1931)』가 발간된 이후, 일제는 조선의 풍수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식민지 정책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조선 신사였다. 그래서 1930년대 이후 설치된 조선 신사는 입지선정에 풍수가 적극 활용되는 면모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1930년 즈음은 일제가 자행한 공간적 훼손에 ‘훼손 의도의 유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 이전 시기는 식민지 통치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훼손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이후는 풍수적 ‘훼손 의도’를 가지고 자행한 ‘풍수 침략’으로 볼 수 있다. 이때 ‘훼손 의도’가 중요한 것이, 만약 공간적 훼손이 훼손 의도가 있다면 민족말살정책을 위한 풍수 침략으로 볼 수 있지만, 훼손 의도가 없다면 오늘날의 각종 개발에 따른 국토 훼손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조사보고서 한 권이 단맥을 포함한 일제의 공간적 훼손 양상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명확한 공식 문서나 기록이 없는 현 상황에서 나름 차선책이 될 수는 있다. 굳이 포장하자면, 『조선의 풍수』는 단순한 개인 저작물 수준을 넘어서며, 조선총독부의 구관조사에 의해 발간된 공식 보고서였다. 이를 통해, 일제의 조선의 풍수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전국의 풍수 단맥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철도(도로)가 마을이나 주택, 역사적 인물의 묘소를 가로지르거나 바짝 붙어 설치된 곳이 있다. 철도(도로)가 마을의 풍수 형국(形局)을 훼손한 곳도 있다. 또 풍수적 중요지점에 쇠말뚝이 박혀 있는 곳도 있으며, 인물이 나올만한 지세를 가진 마을의 산줄기를 끊었다고 전해지는 곳도 있다. 그 사례들을 전부 일제의 풍수 침략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오늘날의 국토 개발과정의 훼손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1931)』 발간 시기가 전국에 산재한 단맥 사례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풍수 단맥, 경주의 사례 경북 경주의 대표적인 단맥 사례로 ‘양동마을’과 ‘선덕여왕릉’이 있다. 먼저 양동마을 사례를 보자. 경주와 포항을 연결하는 경동선 철로가 양동리 일대에서 크게 ‘U’자형으로 휘어져 유금리로 이어진다. 그런데 일제의 최초 계획은 철로가 양동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에서 안산인 성주봉을 연결하는 산줄기(龍脈)가 끊기게 된다. 이에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해 철로를 우회시켰다고 한다. 이때가 1910년대다. 아직 일제가 조선의 풍수를 식민지 통치사업에 활용할 가치를 못 느끼고 있을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양동마을을 통과하기로 된 철로계획은 특별한 ‘풍수적 단맥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지형 및 공사비용 절감을 고려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그들의 철로 부설의 목적에 양동마을의 풍수적 훼손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주민들의 철로우회 요구는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 임이 자명하다. 두 번째 사례는 선덕여왕릉이다. 이곳은 경주와 울산을 잇는 동해남부선이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지를 갈라놓고 있다. 동해남부선 개통은 1936년도다. 시기적으로 일제의 ‘훼손 의도’가 포함될 수 있다. 이곳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이자 경주인들이 신성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형을 보면 일제의 훼손 의도가 한층 더 명확해진다. 1930년대 이전에는 지금의 국도(노란 실선) 인근으로 협궤철도가 놓여 있었다. 이후 동해남부선을 가설하면서 굳이 협궤철도 인근의 평지를 놔두고 공사가 어려운 지금의 산능선 길을 택했던 것이다. △전국의 단맥설, 주요 등장인물은 이여송과 일제 이외에도 전국에는 단맥설(斷脈說)이 전하는 지역이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일본제국이다. 주요 내용은 큰 인물이 나올 만한 마을의 혈(산줄기)을 자르자 피가 쏟아져 흘렀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단맥 장소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 없이 구전(口傳)으로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실 이러한 단맥설은 거의가 전설로만 머물지 사실이 아닐 개연성이 크다. 민중들의 응어리 진 한(恨)이 풍수의 ‘용맥설(龍脈說)’과 결합해 ‘산천(山川) 혈맥 끊기’라는 구비설화로 고착화된 것이다. 단맥설은 임진왜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여송은 그의 부(父)가 명나라로 귀화한 조선인 출신의 명나라 장수였다. 그는 명나라 원군으로 조선에 왔지만 전투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조선에는 온갖 횡포를 자행함으로써, 많은 조선인들로부터 원성을 받았다. 그에 대한 민중들의 부정적인 생각은 구비설화라는 민족적 응징으로 표출되고 세대를 거쳐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풍수의 ‘산줄기(龍脈)의 강조’ 개념과 합쳐지게 된다. 그래서 완성된 스토리가 ‘이여송이 조선의 산천이 마음에 들어 차지할 욕심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자 산천의 혈맥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일제에 대한 저주와 울분이 등장인물만 바뀌어 재생산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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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1
  • [불교경전] 반야심경의 핵심 사상은 공(空)이다
    1.불교의 공사상 불가의 ‘공(空)’은 ‘비유비무(非有非無)’이다. 즉, 유와 무로부터 초월된 관념이다. 유라는 것[유상-有相]과 무라는 것[무상-無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공상(空相) 이라한다. 도가의 무(無)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공(空)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 하는 실체는 없으며, 오직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즉 인연만 있으므로 자아(自我)가 없는 무아(無我)이며, 이를 공(空) 이라고 한다. 공(空)은 '실유(實有)'가 아니라,'환유(幻有)'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는 있어도 실체·자성(自性)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2.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부분은 2강에서 설명하였지만 이 경전 전체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이어서 한번 더 설명하고자 한다. 반야심경의 한역본으로는 현장의 것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데, 그의 번역에 의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산스크리트본을 그대로 직역하면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현상일 수 있다.”가 된다. 이것을 현장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번역하면서 팔만대장경의 대표적인 문구가 된 것이다. 현장은 갔지만 그가 번역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1400년이 지나도록 모든 불교인의 입을 통해서 독송되고 있다. 번역자의 번역에 따라 영원불멸의 명 번역이 된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그래서 현장의 반야심경이 가장 잘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변하지 않는 실체란 있을 수 없고, 또 변화하기 때문에 현상으로 나타나며, 중생은 그것을 존재로써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오온(五蘊)· 십이연기(十二緣起), 지(智)와 득(得), 일체의 관념과 객관적 존재를 본질적인 관점에서 공(空)이라고 갈파한 이 경전의 입장을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부정적인 허무(虛無)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관념과 객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는 것이다. 3. 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 이 경전에서 갈파한 반야바라밀다나, 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이다. 걸림 없는 마음, 공포가 없는 마음, 교만하지 않는 마음, 영원히 맑고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마음이며 부정을 겪어 그것을 넘어선 대 긍정의 마음이다. 여기서 화합과 평화와 자유와 대 해탈을 얻을 수 있음을 이 경전을 통하여 자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4. 제법공상(諸法空相)→ 집착할 대상이란 본래 없는 것 만물은 독립된 스스로의 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상(假象)에 불과하다. 오직 수많은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공상(空相)이다. 이를 ‘제법공상(諸法空相)’이라 한다.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고 집착[견해, 상(相), 산냐]하는 어느 것도 공(空)이므로 집착할 대상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집착’을 하지 않으면 ‘탐진치’가 없어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며, 마침내 ‘득도’(得道: 열반, 청정무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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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1
  • [풍수연재] 일제의 풍수 침략(1)
    일제강점기는 우리의 문화·역사·언어의 훼손과 왜곡을 강요했다. 식민지 정책이 우리 땅에서 자행되었기에 한반도의 ‘공간’ 또한 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조선신사 설치, 철도나 쇠말뚝에 의한 단맥(斷脈), 조선궁궐의 훼손 등이 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생각들이 같지 않다. 우리 풍수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은 그것들을 풍수적 침략행위로 본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풍수적 ‘훼손 의도’를 가지고 자행한 ‘풍수 침략’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증명할 공식 문서나 자료가 거의 없다. 그래서 반발도 많다. 반대자들은 일제에 의한 공간적 훼손들이 식민지 통치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부가적 훼손으로 본다. 급기야 앞의 주장에 대해 단순한 ‘민족 감성팔이용’ 정도로 취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전국에 산재한 일제의 공간 훼손 사례들을 단순한 감성팔이용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깊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민 끝에 찾은 것이 ‘구관조사(舊慣調査)’였다. 그런데 각종 조사항목에 ‘풍수’ 부문은 아예 없었다. 그나마 민간생활과 관련된 습관, 신앙, 전승문화 등이 ‘민속(民俗)’ 항목으로 포함되었지만, 이것마저도 다른 조사 항목들의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 풍수학계가 생각해 온 것과 반대다. 우리는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줄곧 조선의 풍수에 관심을 갖고 식민지 통치에 적극 활용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조선의 풍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무관심을 바꾸는 계기가 생겼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등장이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촉탁을 받아 당시 구전되어오던 조선의 풍수를 종합 정리해 『조선의 풍수(1931)』를 발간한다. 물론 그는 『조선의 풍수』 외에도 ‘조선의 민간신앙 4부작’으로 불리는 『조선의 귀신(1929)』, 『조선의 무격(1932)』, 『조선의 점복과 예언(1933)』을 연이어 출간했다.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가 발간된 이후, 드디어 일제는 조선의 풍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식민지 정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신사(神社)정책’이었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은 ‘1면 1신사주의’를 표방한다. 전국의 산간벽지에 이르기까지 신사를 세우고 참배를 강요하기에 이른다. 신사를 식민지 지배를 위한 상징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때 풍수가 적극 활용된다. 특히 신사의 입지선정에 풍수가 활용되었다. 신사를 평지가 아닌 산 중턱이나 구릉지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기존의 조선 읍치의 풍수 양상과 충돌할 것은 뻔하다. 오히려 충돌을 노린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읍치 후방의 주산(主山) 중턱이었다. 읍치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타고 있음으로써, 지맥을 끊거나(단맥) 주산의 정기를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청룡·백호 능선이라도 올라탔다. 대표적으로 경북 청송의 청송 신사가 있었다. 청송 신사는 고을 주산인 방광산 지맥(地脈)이 정통으로 내려오는 남사면에 입지해 있어, 주산에서 고을로 이어지는 정기를 끊고 있는 위치였다. 조선 신사의 그러한 위치는 풍수적 목적 외에도 심리 효과도 발휘했다. 평소 ‘낮은’ 곳에서 살았던 조선인은 구릉지 위 ‘높은’ 곳에 있는 신사로부터 무의식적인 신성, 권위, 감시 등의 감정을 강요받았다. 일제가 가장 공들인 신사는 조선신궁이었다. 조선신궁은 전국의 모든 신사의 대표격이자 식민지 지배 전략의 상징물이어야 했다. 그래서 한반도의 중심부인 서울(경성)이 선택되었고, 그중에서도 남산의 한양공원이 낙점되었다. 한양공원은 구릉지를 타고 있어 시가지 전체를 조망하고 위압할 수 있는 위치였다. 풍수적으로는 경복궁의 안산(案山)인 남산을 타고 있어서, 경복궁 전면에 배치된 조선총독부와 함께 전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자리였다. 경북 경주 읍내에도 신사 두 곳이 있었다. 1930년대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신사는 경주교회(동부동) 뒷마당 부지에 있었다. 당시 이곳은 시가지 중심부로서, 경주 거류 일본인들의 경제성·접근성이 고려된 위치였다. 또 한 곳은 1930년대 이후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성공원 신사다. 이곳은 경주민들에 대한 황성공원의 상징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된 입지였다. 경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임에도 북서쪽이 유난히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신라시대 때부터 동쪽의 소금강산에서부터 서쪽의 서천(西川)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풍수 관념이 퇴색된 오늘날에도 ‘공원구역’으로 난개발이 제한된다. 황성공원은 산줄기 체계로 보면 경주 도심부의 상징적 주산이다. 또 물줄기 체계로 보면 남천과 서천이 만나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된다. 그만큼 풍수적으로 중요한 자리란 뜻이다. 일제가 동부동에서 황성공원으로 신사를 옮길 때는 다분히 의도가 있었다. 경주인이 풍수적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곳에 입지시킨 것이다. 황성공원 신사는 입지선정에 풍수가 활용된 일제의 풍수 침략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 박성대 박사 현)대구카톨릭대학교 교수 현)영남실학풍수연구소 소장 현)한반도풍수 유튜브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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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8
  • [불교경전] 공(空)이란 무엇인가?
    1. 불가의 ‘공(空)’사상과 도가의 ‘무(無)’ 불가의 ‘공(空)’사상은 도가의 ‘무(無)’사상 보다 한 차원 높은 개념이다. 무는 부존재를 의미한다. 불가의 ‘공(空)’은 ‘비유비무(非有非無)’이다. 즉, 유와 무로부터 초월된 관념이다. 유라는 것[유상-有相]과 무라는 것[무상-無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공상(空相) 이라한다. 공(空)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 하는 실체는 없으며, 오직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즉 인연만 있으므로 자아(自我)가 없는 무아(無我)이며, 이를 공(空) 이라고 한다. 공(空)은 '실유(實有)'가 아니라,'환유(幻有)'이다. 2. 반야심경의 궁극적 목표는 ‘바라밀다’이다. 바라밀다는 범어인데 번역하면 ‘도피안’ 저 언덕에 도달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있는 이 언덕을 고통과 윤회의 세계, 탐욕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수행을 잘하여 극복하면 저 언덕, 즉 진리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반야의 지혜란 공의 체험으로 얻는 것이고, 공의 체험은 참다운 수행에서 나오는 것인데 사람의 영적인 단계나 지위에 따라 3가지가 있습니다. 3. 공의 종류 ? 1) 인식내용으로서의 공-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대상을 보고 평가함에 있어 제7말라야식이라는 아집에 의해서 자기 입장에 서서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데 익숙해져 있음으로 인해 좋다, 싫다, 괴롭다, 즐겁다 하는 것이 생겨난다. 이것은 인식내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변계소집성) 실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인 것입니다. 2) 존재로서의 공- 모든 삼라만상이 영원히 하나의 실체로 머물러 있는가를 관찰해보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인연에 의해서 내가 전생에 썼던 만큼 펼쳐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의타기성) 즉,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가유-假有)들이니 결국은 ‘공(空)‘이라는 것이다. 3) 진리 차원의 공- 앞의 인식차원이나 존재차원의 공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본성 차원의 공은 내가 인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바로 그것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차원이다. 즉 주관과 객관을 모두 벗어난 마음자리이기에 자기 스스로 깨쳐야 알 수 있는 부처나 보살의 지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리이다.(원성실성) 우리의 육신은 지수화풍 4대가 인연의 힘에 의해 남자 또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6근이 안으로 눈이 멀어 4대의 모습이 자기 모습의 실체로 알고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선업도 짓고 악업도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적을 평생 자기 아들로 삼는 마음인데 원성실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을 썼기 때문이다. 본성을 미하여 일으키는 순간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 이 언덕이고, 나고 죽음이 없는 본성을 깨달으면 저 언덕인 것이다. 경계를 만나도 항상 속지 말아야 한다. 중생들은 어떤 경계를 만나게 되면 판단하게 되는데, 이때 판단을 하지 않고 관찰을 해야 한다. 관찰과 판단의 차이는 관찰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제 3자 입장에서 경계를 보는 것인데. 판단은 내 입장에서 상대를 보는 것이다. 위파사나 수행에서 알아차림이 있다. 경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여 알아차림 함으로써 그 분별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다. 경계가 일어나면 말라야식 즉 아집, 아견, 아치, 아만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볼 때는 판단이 나오고, 한 생각을 쉰 상태에서 상대를 살펴보면 관찰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도 닦는 요령인 것이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쓰라‘하는 것도 이와 같은 뜻이 된다. 본성의 자리는 대상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한 생각 쉼으로써 체험되어 지는 것이다. 독자들이여 이 우주의 무한한 만큼이나 부처님 법 또한 무한함이다. 인생에서 진정 불법의 의미를 느껴보고 깨달아 저 바라밀로 가보지 않으시렵니까? (월간 관세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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