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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 우리말 반야심경
- ▲우리말 반야심경 한역 「반야심경」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부터 전통적인 불교의식에 고졸한 맛 그대로 오랜 세월동안 독송하고 있지만, 불교 대중화를 위해서 대중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로 풀이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한문의 뜻을 새기며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말로 읽어 직접 뜻이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에서였다. 조계종에서도 한글 반야심경을 정하였는데 오늘은 여러 우리말 해설 가운데 청담스님이 번역한 「우리말 반야심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님만의 독특한 새김이 있어서 반야심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청담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큰 지혜로 참 '마음'에 돌아서는 말씀관자재보살이 지혜로 도를 닦아 '참마음 자리'를 깨닫고 보니, 물질, 느낌, 따짐, 저지름, 버릇 등의 다섯 가지 '마음'의 고난에서 벗어났느니라.사리불이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므로 물질이 바로 허공이며 허공이 바로 물질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의 느낌과 따짐과 저지름과 버릇들이 바로 부처님의 밝은 지혜이며 부처님의 광명지혜가 바로 중생들의 나쁜 생각이니라.사리불이여, 이 모든 것들이 없어진 '참마음 자리'는 생겨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눈, 귀, 코, 혀, 몸, 생각도 없으며 또한 형상, 소리, 냄새, 맛, 이치도 없으며, 쳐다보는 일도 들어보는 일도 맡아보는 일도 맛보는 일도 대어보는 일도 생각해보는 일도 없으며, 허망한 육신을 '나(自我)'라고 하는 그릇된 생각(無明)도 없고, '나'라는 그릇된 생각이 없어졌다는 생각마저 없으므로 '나'를 위한 움직임(行)도 없으며 생멸도 없어지고 주관과 객관의 대립도, 감각, 욕심, 가짐, 업(業), 출생, 사망 등 열두 가지 인연법칙이 모두 없으며, 늙고 죽는 것도 없고 늙고 죽음 다 없어진 것도 없으며 그 괴로움의 원인과 그 괴로움을 벗어난 것과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까지도 없으므로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느니라. '마음'은 본래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이 되어 아무 데도 걸린 데가 없으므로 겁나는 일이 없으며 꿈같이 허망한 생각이 없어서 최후의 열반에 이르게 되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도 이 '마음자리'를 깨달아 가장 높고 바르고 밝은 지혜로써 생사를 초월했고 자유자재한 경지를 성취했느니라.그러므로 생각의 주체인 이 마음도 아닌 '마음'이 가장 신비하고 가장 밝고 가장 높은 주문이며, 절대 아닌 절대로서 이 마음은 모든 것과는 다르면서 또한 만물과 둘이 아닌 주문이므로 능히 모든 고난을 물리칠 수 있고 진실하며 허망됨이 없느니라. 이에 마음을 깨닫는 주문을 말하리라.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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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 우리말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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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전통민속마을의 전형, 양동마을의 풍수(1)
- 우리나라에 ‘전통민속마을’ 이름이 붙은 마을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관광지로의 탈바꿈 화 정도가 작은 곳이 양동마을이다. 자연히 전국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어왔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발길이 더 늘어났다. 유명세에 걸맞게 풍수학계에서도 양동마을에 대해 많이들 언급해 왔다. 이에 2회에 걸쳐 풍수의 시선으로 양동마을을 살펴본다. 단 이번 회는 깊이 있는 풍수 이야기보다 방문객의 시선에서 양동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풍수적 볼거리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양동마을, 나아가 우리나라 전통마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양동마을 풍수의 시작과 끝, 설창산과 성주봉 마을의 주산 설창산이 자식을 품듯 두 팔을 크게 벌려 마을을 품고 있다. 풍수의 시선에서 양동마을 관람의 시작은 마을 입구에서 시작한다. 마을 밖 주차장에 주차 후, 걸어서 매표소와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면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보인다. 이곳이 마을 입구다. 여기서 고개를 들어 보면 저 멀리 마을 뒤로 제법 높은 산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단정하고 품격이 느껴진다. 이 봉우리가 양동마을의 풍수적 주산(主山)인 설창산이다. 마을의 모든 고택들은 설창산 줄기에 잇대어 있다. 모두 설창산 정기를 이어받고 있다는 말이다. 또 설창산이 양팔을 크게 벌려 제 자식을 돌보듯 마을을 품고 있다. 그 품 안에서 고택들이 사이좋은 형제 마냥 오순도순 모여있다. 그래서 양동마을 풍수의 첫걸음은 설창산에 눈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번에는 좌측의 개울을 건너 향단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뒤(동쪽)를 돌아보자. 그럼 마을회관 너머로 역시 모양이 봉긋한 산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양동마을의 안산(案山)인 성주봉이다. 우리나라 전통 고택은 단정한 봉우리가 보이는 방향으로 마당과 대문을 배치했다. 봉우리의 좋은 기운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경주 최부자 고택,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 등 전국 여러 고택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사람의 머리에 얼굴이 있고 뒤통수가 있는 것처럼, 산봉우리도 그렇다. 그럼 산봉우리의 어느 쪽이 터를 보고 있어야 좋을까? 그렇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산봉우리의 얼굴이 터를 향해 있어야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터에서 산의 뒤통수가 보이면 결코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를 쳐다보고 눈길을 주고 있을 때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등 돌리고 있는데 괜히 집적거리다가는 치한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양동마을에서 성주봉의 얼굴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조금씩 차이 나지만 주요 고택 네 채다. 고택 네 채의 마당이나 대문을 통해 보는 성주봉의 얼굴이 가장 반듯하다.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가문이 성주봉 얼굴이 잘 보이는 곳을 차지하기 위한 풍수 쟁탈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양동마을 고택 방문객은 꼭 마당이나 대문으로 성주봉을 찾아보길 바란다. 관람의 재미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주봉 찾기는 양동마을 풍수의 마무리가 된다. 여기서 잠깐 전통 고택 관람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팁을 드린다. 일반인들이 고택을 방문하면 대문을 통과해 마당에 서서 첫 눈길을 바로 건축물에 맞춘다. 이를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방문객 시선’이라 한다. 이럴 경우 건축물 자체만을 바라보게 되며 건축물과 그 터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풍수의 시선은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마당에서 담장 너머의 산줄기 물줄기에 눈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주인의 시선’이라 한다. 주인의 시선으로 보면 건축 조영자가 왜 이곳에 터를 잡았고, 또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공간구성을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온다. 풍수에 형국론이 있다. 산수(山水)의 모양을 사람이나 동물 등에 비유해 혈을 찾거나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중 산의 형상을 야(也), 물(勿), 일(日), 용(用) 등의 글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양동마을은 물(勿)자형 형국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주산(主山)인 설창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4개의 능선과 그 사이의 골짜기로 이루어진 모습이 물(勿)자를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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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전통민속마을의 전형, 양동마을의 풍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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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쇼생크 탈출'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은 1994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스티븐 킹의 소설을 각색한 극영화다. 프링크 다라본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팀 로빈스가 주인공 앤디 듀프레 역을 하고 모건 프리먼이 앤디의 친구 레드 역을 맡았다. 당시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영화 팬이 아니라도 꼭 봐야 하는 영화가 됐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긴장감 있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주인공 앤디는 1947년 은행의 부지점장 시절에 자신의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뉴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에서 친구 레드와 도서실의 브룩스를 만난다. 교도소장과 간수로 부터 비참한 대우를 받았지만 2년을 견딘다. 악질 간수장 바이런 헤들리에게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후 교도소장은 앤디를 도서관 관리 담당으로 배치한다. 앤디는 간수들의 세금 감면 상담 등을 도와주고 소장의 탈세와 비자금 관리를 도우면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도서관 관리를 맡았던 50년 수감 생활을 하던 브룩스는 가석방 되고 난 후에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교도소로 돌아가려 하다가 기둥에 목을 메고 자살을 한다. 절도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토미 윌리암스라는 젊은 죄수가 입소해 앤디와 친구가 된다. 앤디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토미를 도와준다. 토미를 통해 앤디의 아내와 정부를 죽인 진범인 앨로 불래치가 채포되어 수감 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누명을 벗고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튼 교도소장에게 사정을 보고하고 도움을 청했다. 소장의 불법적인 장부관리를 맡고 있는 앤디의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독방에 가두었다. 토미도 밤중에 불러내어 총살하고 탈옥하려 했다고 발표한다. 그 후 독방에서 풀려난 앤디는 흑인 친구 레드에게 멕시코의 바닷가 마을 지와테네호 이야기를 해주면서 레오가 나중에 출소하면 텍사스 포토행콕으로 와서 큰 나무 아래 돌을 들어내고 메시지를 보라고 한다. 앤디는 밧줄을 준비한다. 죄수들은 앤디가 자살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 점호에 앤디의 방은 비어 있었다. 소장이 수색해 본 결과 앤디는 16년 전에 레드로 부터 조그만 암석 망치와 여배우 포스타를 이용해 벽을 뚫고 나와 수백미터의 하수구를 통과해 쇼생크를 탈출한 것이 밝혀 진다. 벽을 뚫어 생긴 흙을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 운동장에 몰래 버렸다. 앤디는 탈옥한 날 아침에 스티븐스로 신분을 세탁하고 12곳의 은행에 들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모두 인출했다. 맥시코로 잠적하기 전에 쇼생크 교도소장의 부패와 살인에 대한 자료와 장부를 어론사로 보낸다. 정부 당국이 교도소에 들이 닥치자 간수장 헤들리는 체포되고 노튼 교도소장은 자살한다. 레드는 40년의 형기를 마치고 가석방이 됐지만 브룩스와 같이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앤디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포토행콕을 찾아가 보니 앤디의 편지와 함께 용돈이 있었다. 레드는 맥시코 지와타네호에 있는 앤디를 찾아 간다. 해변에서 배를 수리하고 있는 앤디와 재회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악역을 하는 교도소장과 간 수장은 결국 악행이 폭로되고 간수장은 체포되고 교도소장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쇼생크 감옥에서 50년을 복역한 브룩스는 석방되고도 사회 적응을 못하고 감옥으로 되돌아 가려다 목을 메고 죽는다. 2년 형을 받고 들어온 토미는 형을 잘 마치고 출소를 할려 했으나 간수장과 교도소장에 의해 살해 당한다. 4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레드도 사회 적응을 못했으나 친구 앤디를 찿아가 제2의 생을 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앤디는 누명을 쓴 살인자로 종신형은 받고 들어 갔지만 자신의 재능으로 동료들을 도와주고 악독한 간수장을 돕고 교도소장의 비자금 관리를 맡으면서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앤디는 자유를 갈망하며 희망과 양심을 버리지 않고 작은 망치로 16년간 탈출을 위한 벽을 뚫고 탈출한다. 친구 레드까지 맥시코 해변으로 불러 낸다. 교도소 만이 감옥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직장이 감옥이다. 토마처럼 조직 안에서 적응 못하고 맞아 죽는 자도 있다. 브룩스 처럼 50년을 복역하다 보니 그 조직을 벗어나서 못살고 되돌아 가려다 죽는 자도 있다. 레드처럼 사회에 나와 적응을 못하고 앤디를 찾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앤디 처럼 갈구하는 자유와 푸른 꿈, 끓고 있는 양심을 품고 16년을 망치 하나로 탈출의 벽을 뚫고 꿈꾸든 맥시코 해변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말은 하면서 막상 탈출을 못하거나 탈출했다가 돌아오거나 죽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맥시코 해변이 있는가.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이 조직에서 나에게서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자기 탈출을 한다면 맥시코 해변으로 갈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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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쇼생크 탈출' 나는 탈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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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논단] "공천이 곧 당선?…경주 6·3 지방선거, 유권자의 심판이 시작된다"
- 오는 6월3일 치러지는 제9대 지방선거가 2월23일을 기점으로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최대 10여 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전국 단위 정치 일정으로, 지난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선거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단순한 지방 권력 재편을 넘어 현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까지 띨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물론 지역사회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북 지역, 특히 경주를 포함한 동남권 기초단체장 선거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내부 경쟁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 정당 내 공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지역 정치 지형에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경주·영천, 성주, 상주, 예천, 영양, 청송 등 7개 시·군에서는 현직 단체장들이 3선 도전에 나서는 상황이다. 지역 행정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내세운 현직 프리미엄이 작용할지, 아니면 변화 요구가 표심으로 분출될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경주는 상징성이 크다. 지금까지 3선 시장을 배출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주낙영 현 시장이 첫 3선 고지에 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도전장을 내민 박병훈 전 경북도의원 등과의 공천 경쟁에서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지 지역 정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공천이 곧 본선이라는 인식이 강한 지역 정치 현실 속에서 당내 경선은 사실상 본게임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특정 정당 공천이 당선을 담보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정책 경쟁은 실종되고, 인물 검증은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차피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안이한 분위기가 만연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발전의 지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최근 국민의힘 내부의 계파 갈등과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지역 민심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지고 있다. 정당의 책임 정치가 실종된 채 내부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공약의 빈곤이다. 10년 전 선거에서 제시됐던 개발 청사진이 이름만 바뀐 채 되풀이되는 경우를 우리는 수차례 경험했다. 관광도시 고도화, 산업단지 활성화, 인구 유입 정책,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단골 메뉴는 여전하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과 재원 조달 방안, 성과 평가 체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지방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남발되는 공약은 결국 공허한 약속으로 남는다. 경주는 신라 천년 고도의 역사성과 함께 미래 산업과 관광, 인구 구조 변화라는 복합 과제를 안고 있다. 소멸 위기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에, 지방정부 수장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단순히 행정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도시의 장기 비전을 설계하고 중앙정부 및 광역단체와 협력해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물의 경력이나 인지도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과 정책 추진력이다. 결국 해답은 유권자에게 있다. 정당 공천이라는 간판에 기대기보다 후보 개인의 철학과 능력, 지난 공약 이행 실적을 꼼꼼히 따져 묻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요구된다. 경선 과정부터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하고, 토론회와 정책 검증의 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언론 또한 단순한 동향 보도를 넘어 공약 비교, 재원 분석, 정책 실현 가능성 점검 등 심층 보도로 유권자의 판단을 도와야 할 책무가 있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또 한 번의 ‘관성적 선택’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지역 정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경주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첫 3선 시장의 탄생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경주의 다음 4년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 이제는 정당이 아니라 사람을, 구호가 아니라 실천을, 관행이 아니라 변화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그 선택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질 주체는 바로 경주의 유권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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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논단] "공천이 곧 당선?…경주 6·3 지방선거, 유권자의 심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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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늘도 보이스피싱에 속고 있는 당신에게"
- “경찰입니다. 지금 속고계십니다. 지금 통화하고 있는 그 전화, 사기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보이스피싱 의심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면 이미 피해자는 전화기 너머 누군가와 연결된 채이다. 제복을 입고 신분증을 보여도 소용없다.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분은 검사래요.” “금융기관에서 직접 온 전화예요” 경찰청과 금융당국 통계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는 매년 수만 건에 이르고, 2025년 1월–10월간 누적 피해는 경찰청 기준 약 1조 566억원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였다. 더 무서운 사실은 피해건수보다 1인당 피해 금액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자금, 전 재산, 심지어 대출까지 내어 보이스피싱범에게 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은 더 참혹하다. 피해를 막기위해 달려왔지만, 피해자는 이미 우리보다 전화기 너머의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 오늘날의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단순한 전화사기가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정교하게 계산한 조직범죄이다. 공포를 만들고, 상대를 고립시키고,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특히, 최근 가장 위험한 수법은 어플리케이션 설치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보안 어플입니다.” “금융보호 프로그램입니다.” “수사 협조용 어플입니다” 이 말들에 속아 어플을 설치하는 순간, 당신의 휴대전화는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검색기록, 문자, 통화내역, 계좌까지 모두 감시당할 수 있고, 어디로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범은 이 전화를 가로챌 수 있다. 피해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말한다. “제가 직접 경찰에 전화해서 확인했어요” “은행이 전화를 안받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전화기가 범죄자의 손에 장악된 것이다. 오늘도 출동 경찰관은 이야기한다. “이건 보이스피싱입니다. 지금 당장 전화를 끊으셔야 합니다. 어플을 삭제하셔야 합니다. 돈을 보내면 안됩니다” 가장 큰 비극은 피해자들은 이미 보이스피싱범을 신뢰할 수 밖에 없게 설계된 상황 속에서 경찰관을 만난다는 점이다. 그럼 이 잘짜여진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공공기관, 금융기관은 절대 전화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비밀을 요구하지 않는다. 계좌이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로 당신을 협박하지 않는다. 의심은 무례가 아니다. 전화를 끊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오늘 그 한 번의 끊음이 당신의 내일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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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늘도 보이스피싱에 속고 있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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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일제의 풍수 침략(2)
-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1931)』가 발간된 이후, 일제는 조선의 풍수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식민지 정책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조선 신사였다. 그래서 1930년대 이후 설치된 조선 신사는 입지선정에 풍수가 적극 활용되는 면모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1930년 즈음은 일제가 자행한 공간적 훼손에 ‘훼손 의도의 유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 이전 시기는 식민지 통치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훼손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이후는 풍수적 ‘훼손 의도’를 가지고 자행한 ‘풍수 침략’으로 볼 수 있다. 이때 ‘훼손 의도’가 중요한 것이, 만약 공간적 훼손이 훼손 의도가 있다면 민족말살정책을 위한 풍수 침략으로 볼 수 있지만, 훼손 의도가 없다면 오늘날의 각종 개발에 따른 국토 훼손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조사보고서 한 권이 단맥을 포함한 일제의 공간적 훼손 양상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명확한 공식 문서나 기록이 없는 현 상황에서 나름 차선책이 될 수는 있다. 굳이 포장하자면, 『조선의 풍수』는 단순한 개인 저작물 수준을 넘어서며, 조선총독부의 구관조사에 의해 발간된 공식 보고서였다. 이를 통해, 일제의 조선의 풍수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전국의 풍수 단맥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철도(도로)가 마을이나 주택, 역사적 인물의 묘소를 가로지르거나 바짝 붙어 설치된 곳이 있다. 철도(도로)가 마을의 풍수 형국(形局)을 훼손한 곳도 있다. 또 풍수적 중요지점에 쇠말뚝이 박혀 있는 곳도 있으며, 인물이 나올만한 지세를 가진 마을의 산줄기를 끊었다고 전해지는 곳도 있다. 그 사례들을 전부 일제의 풍수 침략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오늘날의 국토 개발과정의 훼손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1931)』 발간 시기가 전국에 산재한 단맥 사례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풍수 단맥, 경주의 사례 경북 경주의 대표적인 단맥 사례로 ‘양동마을’과 ‘선덕여왕릉’이 있다. 먼저 양동마을 사례를 보자. 경주와 포항을 연결하는 경동선 철로가 양동리 일대에서 크게 ‘U’자형으로 휘어져 유금리로 이어진다. 그런데 일제의 최초 계획은 철로가 양동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에서 안산인 성주봉을 연결하는 산줄기(龍脈)가 끊기게 된다. 이에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해 철로를 우회시켰다고 한다. 이때가 1910년대다. 아직 일제가 조선의 풍수를 식민지 통치사업에 활용할 가치를 못 느끼고 있을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양동마을을 통과하기로 된 철로계획은 특별한 ‘풍수적 단맥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지형 및 공사비용 절감을 고려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그들의 철로 부설의 목적에 양동마을의 풍수적 훼손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주민들의 철로우회 요구는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 임이 자명하다. 두 번째 사례는 선덕여왕릉이다. 이곳은 경주와 울산을 잇는 동해남부선이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지를 갈라놓고 있다. 동해남부선 개통은 1936년도다. 시기적으로 일제의 ‘훼손 의도’가 포함될 수 있다. 이곳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이자 경주인들이 신성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형을 보면 일제의 훼손 의도가 한층 더 명확해진다. 1930년대 이전에는 지금의 국도(노란 실선) 인근으로 협궤철도가 놓여 있었다. 이후 동해남부선을 가설하면서 굳이 협궤철도 인근의 평지를 놔두고 공사가 어려운 지금의 산능선 길을 택했던 것이다. △전국의 단맥설, 주요 등장인물은 이여송과 일제 이외에도 전국에는 단맥설(斷脈說)이 전하는 지역이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일본제국이다. 주요 내용은 큰 인물이 나올 만한 마을의 혈(산줄기)을 자르자 피가 쏟아져 흘렀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단맥 장소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 없이 구전(口傳)으로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실 이러한 단맥설은 거의가 전설로만 머물지 사실이 아닐 개연성이 크다. 민중들의 응어리 진 한(恨)이 풍수의 ‘용맥설(龍脈說)’과 결합해 ‘산천(山川) 혈맥 끊기’라는 구비설화로 고착화된 것이다. 단맥설은 임진왜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여송은 그의 부(父)가 명나라로 귀화한 조선인 출신의 명나라 장수였다. 그는 명나라 원군으로 조선에 왔지만 전투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조선에는 온갖 횡포를 자행함으로써, 많은 조선인들로부터 원성을 받았다. 그에 대한 민중들의 부정적인 생각은 구비설화라는 민족적 응징으로 표출되고 세대를 거쳐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풍수의 ‘산줄기(龍脈)의 강조’ 개념과 합쳐지게 된다. 그래서 완성된 스토리가 ‘이여송이 조선의 산천이 마음에 들어 차지할 욕심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자 산천의 혈맥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일제에 대한 저주와 울분이 등장인물만 바뀌어 재생산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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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일제의 풍수 침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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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 반야심경의 핵심 사상은 공(空)이다
- 1.불교의 공사상 불가의 ‘공(空)’은 ‘비유비무(非有非無)’이다. 즉, 유와 무로부터 초월된 관념이다. 유라는 것[유상-有相]과 무라는 것[무상-無相]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공상(空相) 이라한다. 도가의 무(無)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공(空)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 하는 실체는 없으며, 오직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즉 인연만 있으므로 자아(自我)가 없는 무아(無我)이며, 이를 공(空) 이라고 한다. 공(空)은 '실유(實有)'가 아니라,'환유(幻有)'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는 있어도 실체·자성(自性)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2.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부분은 2강에서 설명하였지만 이 경전 전체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이어서 한번 더 설명하고자 한다. 반야심경의 한역본으로는 현장의 것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데, 그의 번역에 의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산스크리트본을 그대로 직역하면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현상일 수 있다.”가 된다. 이것을 현장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번역하면서 팔만대장경의 대표적인 문구가 된 것이다. 현장은 갔지만 그가 번역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1400년이 지나도록 모든 불교인의 입을 통해서 독송되고 있다. 번역자의 번역에 따라 영원불멸의 명 번역이 된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그래서 현장의 반야심경이 가장 잘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변하지 않는 실체란 있을 수 없고, 또 변화하기 때문에 현상으로 나타나며, 중생은 그것을 존재로써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오온(五蘊)· 십이연기(十二緣起), 지(智)와 득(得), 일체의 관념과 객관적 존재를 본질적인 관점에서 공(空)이라고 갈파한 이 경전의 입장을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부정적인 허무(虛無)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관념과 객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는 것이다. 3. 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 이 경전에서 갈파한 반야바라밀다나, 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이다. 걸림 없는 마음, 공포가 없는 마음, 교만하지 않는 마음, 영원히 맑고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마음이며 부정을 겪어 그것을 넘어선 대 긍정의 마음이다. 여기서 화합과 평화와 자유와 대 해탈을 얻을 수 있음을 이 경전을 통하여 자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4. 제법공상(諸法空相)→ 집착할 대상이란 본래 없는 것 만물은 독립된 스스로의 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상(假象)에 불과하다. 오직 수많은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공상(空相)이다. 이를 ‘제법공상(諸法空相)’이라 한다.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고 집착[견해, 상(相), 산냐]하는 어느 것도 공(空)이므로 집착할 대상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집착’을 하지 않으면 ‘탐진치’가 없어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며, 마침내 ‘득도’(得道: 열반, 청정무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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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 반야심경의 핵심 사상은 공(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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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주에 '3선 시장'이 없는 진짜 이유?
- 경주시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보수적이고 정적인 도시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는 정치 민심은 그 어느 곳보다 역동적이고 까다롭다. 민선 이후 단 한 번도 3선 시장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주 유권자들이 가진 '정치적 결벽증' 혹은 '변화에 대한 갈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의 고임은 허용치 않는 경주 민심 경주에서 시장직은 독배와 같다. 재선까지는 '일할 기회'를 주지만 3선은 '기득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비단 시장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장기 독주를 견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려는 지역적 정서가 일종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지속 가능성과 매너리즘 사이 물론 3선 시장의 부재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가 시장 교체와 함께 동력을 잃거나 방향이 수정되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하지만 경주 시민들은 '안정된 정체'보다는 '불안한 변화'를 선택해 왔다. 그래서 경주는 늘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이제 바꿀 때가 됐다"는 정서가 선거 직전 확산되고 현직 프리미엄은 오히려 짐이 된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요인이 있다. 경주는 '시장 중심 도시'가 아니라 '의원·세력 중심 도시'라는 점이다. 시장이 아무리 정책을 내세워도 실제 지역 정치의 중추는 시의회, 도의원, 국회의원 그리고 이들과 연결된 지역 세력이다. 이 구조에서는 강한 시장이 오래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3선 시장은 행정과 정치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시장은 관리자로 환영받을 뿐, 권력자로 성장하는 순간 견제를 받는다. 3선은 곧 '권력화'를 의미하고 경주의 정치 구조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경주는 늘 '안정'을 말하지만 정작 시장만큼은 안정시키지 않는다. 결국 '3선 시장 부재'는 인물의 문제가 아니다. 경주라는 도시가 스스로 만들어온 정치·행정 구조의 결과다. 시장이 오래 가려면 시민이 정책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행정이 성과를 쌓을 수 있어야 하며 정치가 시장을 소모품이 아닌 자산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경주는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이제 시선은 주낙영 시장에게 쏠린다. APEC 유치라는 역대급 성적표를 손에 쥔 그가 과연 '경주시장 3선 불가론'이라는 해묵은 징크스를 깨뜨릴 수 있을까.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경주 시민들이 '장기적 리더십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정치적 변곡점이 될 것이다. 반대로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경주 정치권은 다시 한번 '인물 교체'라는 거센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경주는 '기록'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전통'을 이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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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주에 '3선 시장'이 없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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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덕업일신·망라사방" 경주가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
- 경주의 문화는 언제나 길 위에 있었다. 왕경으로 향하던 고대의 길부터 바다와 대륙으로 뻗어 나가던 근대의 철길까지, 경주역은 그 모든 숨결이 교차하며 겹치던 자리였다. 이곳은 단순히 기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경주가 바깥 세상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세상으로 내보내던 가장 역동적인 관문이었다. 이제 기차는 더 이상 서지 않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폐역이 된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 물음은 곧 APEC 이후 경주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것이며, 천년의 문화를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변모시킬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지난 APEC은 경주를 세계라는 무대 위에 내놓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경주는 화려한 초고층 빌딩이나 속도감 있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천년의 세월이 깃든 유산 위에 국제적 의제를 올리고, 전통과 현대가 충돌 없이 공존하는 미학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덕을 쌓아 업을 날로 새롭게 한다는 ‘덕업일신(德業日新)’의 현대적 실천이라 믿는다. 행사는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전시, 의전, 아카이빙, 콘텐츠 제작의 경험은 경주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이 실제적인 ‘일’들을 경주의 미래로 치환할 장소가 필요하다면, 그 출발점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곳은 단연 구 경주역사여야 한다. 구 경주역을 특정 건축물로만 소비하는 것은 이 장소가 품은 시간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일이다. 이곳은 ‘살아있는 문화복합 공간’으로서, 특히 청년들이 경주의 자산을 직업으로 삼는 ‘문화의 공장’이 되어야 한다. 역사 내에 들어설 청년 거점은 단순한 취업 상담소에 머물러선 안 된다. 문화재 수리 현장을 유리 벽 너머로 가감 없이 공개하고, 전통 공예와 현대적 기획이 만나는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 목수, 석공, 단청장 등 장인들의 기술이 청년의 감각과 만나 ‘전공’이 되고 ‘직업’이 될 때, 덕업일신은 추상적인 표어를 넘어 생생한 일상으로 구현될 것이다. 이러한 내실은 자연스럽게 세계를 향해 그물을 펼치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의 철학으로 확장된다. 망라사방은 힘으로 사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엮일 수 있는 포용의 그물을 조용히 펼치는 일이다. 구 경주역에 유네스코 관련 사무소나 국제문화 교류 거점을 유치하는 상상은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유산 보존과 문화 정책, 글로벌 인턴십이 이곳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경주는 일회성 행사의 도시를 넘어 세계의 인재가 모여들고 다시 뻗어 나가는 국제적 문화 플랫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APEC은 경주를 세계로 밀어 올린 것이 아니라, 경주가 이미 품고 있던 세계성을 재확인해 준 계기였다. 이제 구 경주역은 그 세계성이 머무는 종착역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기차는 멈췄으나 경주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배우고, 매일 고치며, 매일 새로 일하는 덕업일신의 정신이 이 공간을 채울 때, 망라사방의 그물은 경주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다. 사라진 경주역은 그렇게 가장 경주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여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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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덕업일신·망라사방" 경주가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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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일제의 풍수 침략(1)
- 일제강점기는 우리의 문화·역사·언어의 훼손과 왜곡을 강요했다. 식민지 정책이 우리 땅에서 자행되었기에 한반도의 ‘공간’ 또한 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조선신사 설치, 철도나 쇠말뚝에 의한 단맥(斷脈), 조선궁궐의 훼손 등이 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생각들이 같지 않다. 우리 풍수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은 그것들을 풍수적 침략행위로 본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풍수적 ‘훼손 의도’를 가지고 자행한 ‘풍수 침략’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증명할 공식 문서나 자료가 거의 없다. 그래서 반발도 많다. 반대자들은 일제에 의한 공간적 훼손들이 식민지 통치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부가적 훼손으로 본다. 급기야 앞의 주장에 대해 단순한 ‘민족 감성팔이용’ 정도로 취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전국에 산재한 일제의 공간 훼손 사례들을 단순한 감성팔이용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깊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민 끝에 찾은 것이 ‘구관조사(舊慣調査)’였다. 그런데 각종 조사항목에 ‘풍수’ 부문은 아예 없었다. 그나마 민간생활과 관련된 습관, 신앙, 전승문화 등이 ‘민속(民俗)’ 항목으로 포함되었지만, 이것마저도 다른 조사 항목들의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 풍수학계가 생각해 온 것과 반대다. 우리는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줄곧 조선의 풍수에 관심을 갖고 식민지 통치에 적극 활용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조선의 풍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무관심을 바꾸는 계기가 생겼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등장이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촉탁을 받아 당시 구전되어오던 조선의 풍수를 종합 정리해 『조선의 풍수(1931)』를 발간한다. 물론 그는 『조선의 풍수』 외에도 ‘조선의 민간신앙 4부작’으로 불리는 『조선의 귀신(1929)』, 『조선의 무격(1932)』, 『조선의 점복과 예언(1933)』을 연이어 출간했다.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가 발간된 이후, 드디어 일제는 조선의 풍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식민지 정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신사(神社)정책’이었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은 ‘1면 1신사주의’를 표방한다. 전국의 산간벽지에 이르기까지 신사를 세우고 참배를 강요하기에 이른다. 신사를 식민지 지배를 위한 상징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때 풍수가 적극 활용된다. 특히 신사의 입지선정에 풍수가 활용되었다. 신사를 평지가 아닌 산 중턱이나 구릉지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기존의 조선 읍치의 풍수 양상과 충돌할 것은 뻔하다. 오히려 충돌을 노린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읍치 후방의 주산(主山) 중턱이었다. 읍치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타고 있음으로써, 지맥을 끊거나(단맥) 주산의 정기를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청룡·백호 능선이라도 올라탔다. 대표적으로 경북 청송의 청송 신사가 있었다. 청송 신사는 고을 주산인 방광산 지맥(地脈)이 정통으로 내려오는 남사면에 입지해 있어, 주산에서 고을로 이어지는 정기를 끊고 있는 위치였다. 조선 신사의 그러한 위치는 풍수적 목적 외에도 심리 효과도 발휘했다. 평소 ‘낮은’ 곳에서 살았던 조선인은 구릉지 위 ‘높은’ 곳에 있는 신사로부터 무의식적인 신성, 권위, 감시 등의 감정을 강요받았다. 일제가 가장 공들인 신사는 조선신궁이었다. 조선신궁은 전국의 모든 신사의 대표격이자 식민지 지배 전략의 상징물이어야 했다. 그래서 한반도의 중심부인 서울(경성)이 선택되었고, 그중에서도 남산의 한양공원이 낙점되었다. 한양공원은 구릉지를 타고 있어 시가지 전체를 조망하고 위압할 수 있는 위치였다. 풍수적으로는 경복궁의 안산(案山)인 남산을 타고 있어서, 경복궁 전면에 배치된 조선총독부와 함께 전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자리였다. 경북 경주 읍내에도 신사 두 곳이 있었다. 1930년대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신사는 경주교회(동부동) 뒷마당 부지에 있었다. 당시 이곳은 시가지 중심부로서, 경주 거류 일본인들의 경제성·접근성이 고려된 위치였다. 또 한 곳은 1930년대 이후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성공원 신사다. 이곳은 경주민들에 대한 황성공원의 상징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된 입지였다. 경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임에도 북서쪽이 유난히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신라시대 때부터 동쪽의 소금강산에서부터 서쪽의 서천(西川)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풍수 관념이 퇴색된 오늘날에도 ‘공원구역’으로 난개발이 제한된다. 황성공원은 산줄기 체계로 보면 경주 도심부의 상징적 주산이다. 또 물줄기 체계로 보면 남천과 서천이 만나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된다. 그만큼 풍수적으로 중요한 자리란 뜻이다. 일제가 동부동에서 황성공원으로 신사를 옮길 때는 다분히 의도가 있었다. 경주인이 풍수적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곳에 입지시킨 것이다. 황성공원 신사는 입지선정에 풍수가 활용된 일제의 풍수 침략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 박성대 박사 현)대구카톨릭대학교 교수 현)영남실학풍수연구소 소장 현)한반도풍수 유튜브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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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일제의 풍수 침략(1)


